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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금융실명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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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금융실명제에 대해


1993년 8월 12일에 김영삼 대통령이 선포한 긴급명령과 후에 이를 확정한 법입니다. 금융거래를 반드시 실명으로 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발표 다음날인 1993년 8월 13일부터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이 없으면 통장을 만들 수 없고, 계좌이체도 할 수 없는 제도입니다. 세금이 발생하는 거래도 전부 실명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전혀생 각도 못했던 세금 환수율 상승효과까지 거두었습니다. 하나회 척결과 더불어서 김영삼 전 대통령 최대 업적 중 하나. 96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예금주의 익명, 차명, 가명 계좌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예금을 늘리고 보려는 정책이었지만, 이러다 보니 검은 돈이 적지 않게 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가 이 지경이 된 이유도 이런 검은돈과 극에 달한 탈세 탓에 실질적인 세금 회수율이 11%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그러면 차명계좌에 쌓아둔 검은 돈이 캐내지는 것이 불리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차일피일 미루어지면서 뭉기적거리기만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고 나서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이 제2의 장영자, 이철희 사건을 막고 조세부담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금융실명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건의하였고, 《금융실명거래에관한법률》까지 제정했으나, 사실상 실행되지 못하고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단 금융실명제 자체는 김영삼의 대선공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과 실행의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은 취임과 동시에 하나회도 날려버린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금융실명제 역시 하나회 숙청과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나 김현철이 언급한 것처럼,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려면 집권 1년차에 긴급명령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처리를 확정지은 것이 집권 후 4개월만인 1993년 6월 말이었습니다. 이후 김영삼은 경제부총리 이경식과 재무부장관 홍재형을 불러서 금융실명제를 극비리에 준비할 것을 지시합니다. 보안이 새면 당장 2명의 목부터 날리겠다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이후 2명은 그 날로 특별팀을 조직해서 보안유지 전쟁에 들어갑니다. 총괄을 담당한 이경식 부총리는 강남 대치동에서 KDI와 함께 초안을 잡기 시작했고, 홍재형 장관은 차관급 이상은 완전히 배제하고 김용민 세제실장이나 김진표 세제 심의관을 포함한 실국장급만 모아서, 새로 마련한 과천시 사무실에 틀어박혔습니다. 이 특별팀은 1개월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면서도, 꼬리가 잡히면 안 되기 때문에 해외 출장을 명목으로 해서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극비리에 귀국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트렁크 끌고 공항으로 갔다가, 그 자리에서 사무실로 유턴하는 것은 양반이었습니다. 


해외전화인 척 하고 안부전화도 걸었다고 하니 보안유지 하나는 전쟁이라는 표현이 부족함이 없다.8월이 되자 대략적인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회 숙청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는 거의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국무총리였던 황인성도 전개 정도를 몰랐고, 박재윤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은 금융실명제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해서 애초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그리고 남은 것은 D-Day 설정. 원래 계획구상은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에 발표할 예정이었습니다. 은행에 준비할 여유를 주고, 또한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웬걸. 하필이면 일요일이 8월 15일 광복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1주일을 더 미루면 보안이 약해질 위험이 있었다는 이유로 앞당겨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금융실명제 실시 바로 전날이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김영삼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철저하게 진행할 생각이었고, 금융실명제는 이와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이 증언한 김영삼의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대한 입장은 꽤나 강경합니다. 그리고 1993년 8월 12일 저녁 7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내려서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다.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전문 긴급명령권은 헌법상 인정되는 대통령의 비상대권(권한)으로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닙니다. 그래서 함부로 쓰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큰데, 그럼에도 이것을 사용한 이유는 국회입법 형태를 거치면 입법하는 동안 검은돈이 다 빠져나갈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조치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비실명계좌의 실명확인 없는 인출을 금지합니다. 순인출 3천만원 이상인 경우 국세청에 통보하며,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다.8월 12일 오후 8시를 기해 위 사항을 실시하고, 13일은 오후 2시부터 금융 기관의 업무를 시작합니다. 사실 어마어마한 혼란이 생긴 건 당연합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은행이 늦게 열리게 된 것은 물론이고, 뉴스를 늦게 알아서 은행에 갔는데 갑자기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해서 당황했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지하경제를 크게 파낼 수 있었고, 정경유착 등 각종 부정부패를 막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법이 발안되지 않았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리스보다 더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 정책이 가져다 준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13일 당일에 전국 은행들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부정부패 척결에도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대학생에게 실시한 '사회인 인기투표'에서 아이돌 가수도 이를테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든가 당대 최고의 탤런트도 아닌, 김영삼 대통령이 떡하니 1위에 올라가는 일까지 있고, 1993년 대한민국 100대 스타를 뽑는데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관련 게시물. 지금도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을 거론할 때 하나회 척결과 함께 꼭 거론되는 정책 중 하나.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몇 년 뒤 김영삼 대통령은 IMF 크리와 측근이었던 아들 김현철의 비리가 터지면서 인기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 비리가 밝혀진 것도 금융실명제 덕분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금융실명제가 얼마나 부유층에 위협적이었는지는 그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사소한 문제만 생기면 금융실명제 때문에 경제위기라고 기사가 났습니다. 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융실명제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데 기본권제한은 법률로써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헌법 제37조 제2항). 예외적으로 긴급명령권 등의 요건을 충족한 경우 법률이 아닌 긴급명령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의 이 조치가 긴급명령권의 요건 중 긴급성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법률이 아닌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한 것은 아닌지 문제된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나 더 걸려 있는데 이 금융실명제 문제가 통치행위에 해당되어서 헌법재판이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통치행위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해서 사법부의 심사가 배제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전의 계엄령과 마찬가지로 이게 통치행위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되면 애초에 사법심사가 되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이 통치행위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기본권의 문제는 통치행위라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본안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통치행위 부정설이나 제한적 부정설의 논리인데 이후 시기의 재판부는 기본권과 통치행위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주 특이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송은 각하 판결의 가능성은 넘어서 본안판단으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본안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는 해당 사건에 대하여 긴급명령권의 조건[7]을 충족하였다고 판단하여 헌법소원심판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모든 금융거래시에는 금융기관이 거래자의 실명확인증표를 확인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주민등록증이지만, 은행마다 인정해 주는 실명확인증표의 범위가 굉장히 다양하므로 혹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고 발급신청확인서도 받지 못했는데 급히 은행일을 보아야 한다면 먼저 콜센터나 창구에 물어보자. 정말 기상천외한 실명확인증표도 알려준다.처리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초반 며칠동안은 혼란이 많았습니다. 총 주가가 700포인트도 안 되던 상황에서 첫날 30포인트, 다음날 다시 30포인트가 하락하는 폭락장이 이어졌고, 1000여개의 종목이 하한가를 쳤습니다. 사채시장이나 탈세와 비리의 용도로 과열되었던 고액 골동품이나 미술품 시장은 그야말로 얼어붙었다. 


은행에는 실명으로 전환하려는 고객들로 미어터졌고, 은행 문 앞에서는 실명전환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고위 공직자, 정치인, 사채업자 들이 머리를 싸맸다. 또한 차명계좌를 빌려줬던 명의자가 대포통장에 있던 3억원을 모두 인출하고 해외로 도피해 피해자가 고소하는 사건 등, 명의자가 돈을 가져가 버리는 사건이 몇몇 있었지만, 돈이 명의자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여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빨리 수습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예상가능한 범위이므로 정부에서 빨리 수습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난무했고, 앞서 각주에서 언급된 것처럼 상당수 기업들도 무반응 혹은 외견적으로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식시장의 동요는 처음 2일을 정점으로 해서 사그라들었고, 어느 정도는 지하자금이 양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일경제신문이 6개월 후에 쓴 기사를 보면 확실히 안정세가 뚜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포통장, 차명계좌가 넘쳐나긴 하는 모양입니다. 세금 절세 및 탈세의 용도로서 배우자나 가족의 명의를 이용하여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는 부자일수록 재테크 기술 및 자금 여유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널리퍼진 절세 테크닉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국세청에서 감지해서 새로운 법을 제정해 이를 막아버립니다. 그럼 또 꼼수를 찾는 꼬리 물기 싸움. 그래도 친인척 계좌까지는 너무 쉽게 추적이 가능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의 차명계좌는 범죄에 이용되기 너무 좋습니다. 


물론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이 나중에 덤탱이 당하기 때문에, 주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서 빚 독촉 대신에 명의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불행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큰 결점이 남아 있는데, 금융거래실명제의 가장 큰 허점은 ‘차명계좌를 만든 사람이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재는 전자금융거래법이 생겨 어느 정도 처벌이 가능해지기는 했습니다. 2015년 부터는 통장을 빌려주면 처벌받는 조항이 강화되어 빌려주기만 해도 무조건 처벌 받도록 바뀌었습니다. 금융거래실명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를 보면 금융기관이 통장 등을 개설할 때 실명을 확인하지 않은 금융기관의 임원 또는 직원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실명을 확인하지 않은 금융기관 직원은 처벌 받지만, 차명계좌를 만든 사람이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회 통념적이거나 비슷한 법에 비추어 볼 때 유죄를 의심할 수 없는 사안이라도,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관련 법률이 없을 때는 처벌할 수 없습니다. 즉 불완전한 법체계인 것입니다. 청소년보호법의 경우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와 같은 다른 방법으로 규율할 수 있지만, 차명계좌는 그것조차 한동안 불가능했습니다. 외국에서도 금융실명제하고 꼭 같진 않지만, 자금세탁 방지제도에 고객확인절차가 포함되어 있어 금융기관의 직원이 계좌주의 신원과 거주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외국에서도 은행계좌를 열거나 일정 금액 이상을 인출할 때 등 은행업무를 볼 때 신분증을 요구하는 일이 많고, 신분증이 없으면 아예 안 받아준다.외국에서는 한국과 같은 강제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있는 국가가 거의 없다보니 보통 거래를 시작할 때에는 신분증명이랑 주소증명을 할 만한 서류 각각 한두 개를 요구합니다. 


가령 여권이랑 운전면허증 같은 외국인일 경우에는 외국인등록증도 한국에서는 모기업의 고객확인절차를 그대로 가지고 온 HSBC에서 이걸 체험할 수 있습니다. HSBC의 경우 신분증을 제시하더라도 신분증상의 거주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경우 공공기관에서 보낸 우편물이나 집 계약서 같은 서류를 제출해야 계좌를 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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